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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날짜 12-05
제목 [연합뉴스] 국립오페라단 '파르지팔' 한국 초연



마침내 바그너 공연의 길을 열다

 

(서울=연합뉴스) 이용숙 객원기자 = 무대 위 거대한 거울이 서서히 경사 각도를 바꿔 오케스트라 피트와 객석을 비추며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허무는 순간, 오랜 꿈은 현실이 됐다. 2008년 예술의 전당이 기획했다가 무산된 바그너 '파르지팔'의 한국 초연이 그로부터 5년이 흐른 2013년 10월 1일, 국립오페라단 기획으로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이루어진 것. 이날 한국의 오페라 관객들은 긴 세월 간절히 기다려 온 세계적인 베이스 연광철의 감동적인 국내 데뷔 무대를 드디어 만날 수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국제적인 명성을 지닌 최고의 바그너 가수들과 지휘자, 연출가가 호흡을 맞춘 무대로, 바그너의 성지로 불리는 바이로이트와 비교해도 별 손색이 없는 수준의 공연을 경험했다. 마침내 바그너 공연의 대로가 열렸다.

먼저 바이로이트에서 연출한 '탄호이저'에서 그랬듯 프랑스 연출가 필립 아흘로(연출, 무대디자인, 조명디자인)는 이번 공연에서도 환상적인 색채와 빛의 마술로 객석을 매혹했다. 1막과 3막 무대로 설정한 독일 낭만주의 화가 카스파 다비트 프리드리히의 '북극해(Das Eismeer)' 풍경으로 연출가는 성배 세계의 상처 및 희망의 좌절을 표현했다. 생명력과 권력을 상징하는 나무는 1막에서 빙하 옆에 비스듬히 서 있다가 3막에서는 몰락한 성배기사들을 은유하듯 말라죽은 채 바닥에 쓰러졌다. '파르지팔' 연출에서 관심의 초점이 되는 성배의 형상은 술잔이 아니라 얼음 속에 빛나는 핏빛 돌로 표현했다. 바그너 '파르지팔'의 토대가 된 볼프람 폰 에셴바흐의 13세기 기사문학 '파르지팔'의 원형을 차용한 것.

 


세계적인 바그너 가수들의 참여도 이번 공연을 더 빛나게 했다. 타이틀 롤보다도 훨씬 비중이 큰 기사 구르네만츠 역의 연광철은 1막 첫 장면부터 3막 피날레까지 기품 있는 존재감으로 무대를 채웠다. 어떤 독일 가수보다도 정확한 발음으로 단어 하나하나의 의미를 새겨가며 노래했고, 상대 가수에게 즉각적이고 정교하게 반응하는 연기로 무대 전체에 활력을 줬다. 쿤드리 역의 스위스 메조소프라노 이본 네프는 풍부한 성량과 파워 넘치는 고음으로 배역의 극적인 성격을 탁월하게 창조했고, 파르지팔 역의 영국 테너 크리스토퍼 벤트리스는 미성이면서도 탄탄하고 날카로운 고음을 지닌 전형적인 바그너 영웅 테너의 면모를 과시했다. 특히 쿤드리가 파르지팔을 유혹하는 2막 장면에서 두 주인공의 가창 대결은 관객을 완벽하게 몰입시켰다. 바리톤 김동섭은 성배 왕 암포르타스의 고통과 절망을 생생하게 연기했고, 바리톤 양준모는 깊이 있는 표현력으로 악의 화신 클링조르 역을 노래해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유럽의 권위 있는 오페라 전문지 '오펀벨트(Opernwelt)'가 '2013년 올해의 지휘자'로 선정한 로타 차그로섹은 바그너 음악극 지휘의 충분한 경험을 살려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와 함께 최선의 연주를 끌어냈다. 원전을 존중한 정확한 해석, 무대 위의 성악가들을 최대한 배려한 음량조절, 필요 이상의 힘이 들어가지 않은 가볍고 유려한 흐름이 이날 연주의 특징이었다. 1막에서 불안한 흔들림이 있었고 때때로 목관이 난조를 보인 것을 제외하면 전체적으로 잘 다듬어진 연주였다. 국립합창단, 그란데오페라합창단, CBS소년소녀합창단이 함께한 합창의 역동성과 하모니도 극의 감동에 일조했다.

경사 거울을 사용해 관객의 시야를 확장하는 방식은 세계 오페라 무대의 새로운 트렌드가 된 지 오래지만, 이번 공연에서는 특히 효과적으로 쓰였다. 거울을 통해 성배가 노출되는 신비로운 장면은 잊지 못할 아름다움이었고, 꽃처녀들의 다소 부담스러워 보이는 붉은 의상도 거울 속에서는 진짜 꽃들이 피어난 듯한 착시효과로 작용했다.

유난히 긴 '파르지팔'의 1막에서 관객들을 극에 몰입시킬 수 있는 변화무쌍한 아이디어의 부재는 아쉬움을 남겼다. 하지만 바그너 원작과는 달리 피날레에서 쿤드리가 죽지 않고 파르지팔이 왕관을 포기하며 꽃처녀들이 성배기사들과 짝을 짓는 결말은 참신했다. 성배기사들이 금욕적이고 폐쇄적인 엘리트 남성 결사로 남지 않고 남녀 양성의 조화로 세상의 평화를 향해 나아간다는 희망적 결말이다. 의미를 잘 살린 번역 자막(정준호 역)과 풍성한 작품 정보가 담긴 프로그램북도 작품 이해를 크게 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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